전문연구요원 훈련소 후기 - 13일차 (2월 6일, 화요일)

논산 육군훈련소에서의 3주간 쓴 일기를 타이핑한 것. 2024.01.25 ~ 2024.02.15 3주간 26연대 1교육대대 1중대 2생활관에서 보충역 과정을 수료.

원본을 최대한 유지한 채로, 적당히 가독성만 좋게 정리함.

  • 예상대로 힘든 하루였다. 어떻게 힘든지는 예상과 다르긴 했지만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긴 했다. 있었던 일들을 모두 적으려면 시간순으로 적어야겠다.
  • (아침점호) 비가 와서 어제처럼 실내점호로 진행했다. 몸이 피곤한 상태에서 불침번도 서고 나니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몸이 엄청나게 무거웠다. 아침점호가 끝나자 마자 아침식사 설거지를 하러 이동했다.
  • (오전 설거지) 배식조의 일을 적당히 도와주다가 (어제 우리가 해 봤으니 인수인계 할 겸)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식사를 하고 바로 설거지 작업을 시작했다. 어제 우리에게 인수인계 해 준 쪽에서 좀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알려줘서 처음에는 많이 버벅거렸다. 그러다가 20번 훈련병이 작업 방식을 잘 짜 주고, 숙련도가 적당히 쌓인 뒤에는 속도가 점점 붙었다. 나는 24번 훈련병과 함께 식기 (젓가락, 숟가락 컵) 세척을 맡았다. 대강 식기 세척조, 식판 세척조, 국그릇, 이외 모든 일 정도의 4개 그룹으로 나눠서 일한것 같다. 나는 하루종일 식기세척만 해서 정확히는 모르겠다. 정신없이 관성으로 몸이 움직이고 겨우 세척 일이 다 끝나고 나면, 잔반을 버리고 배식용 집기와 통들을 세척해야 하는데 이 과정도 상당히 힘들다. 특히 잔반통이 무겁기도 하고 비위 상할만 해서 이 작업을 담당한 훈련병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.
  • (오전 정비) 배식조는 다른 생활관보다 1~1.5시간 가량 늦게 교장으로 출발했다. 덕분에 오전에 약간이나마 휴식을 취하고 개인정비를 조금 할 수 있었다. 나는 너무 힘들어서 이 때 생활관에 남은 과자를 조금 먹었다. 훈련소 와서 처음 먹는 부식이었다. 조금이라도 칼로리를 채워 넣어 둬야 할 것 같았다. 칙촉 비슷한 것 (브루노아?) 3개, 제로 카카오케이크 2개 정도 먹은 것 같다.
  • (오전 교장으로 이동) 배식조만 따로 교장으로 이동했다. 공격군장+방독면을 메고 이동했다. 비가 제법 와서 판초우의를 입고 이동했다. 판초우의가 편하긴 한데 찝찝한건 어쩔 수 없다. 나는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냄새에 덜 민감한 편인것 같다.
  • (오전 교육) 교장은 그리 멀지는 않았다. 도착하니 11시가 거의 다 되어서 오전 교육은 엄청나게 약식으로 진행됐다. 포복 기술 4가지 시범을 보고, 두세번 따라해 보았다. 교장 도착이 늦은 상황에서 점심 배식을 위해 일찍 불려나가기도 했다. 그래서 오전 교육은 사실상 1시간도 안 들은 것 같다.
  • (점심 배식) 배식조는 5생활관인데 우리도 도와주기 위해 작업에 투입되었다. 근데 결과적으로 힘든 일은 우리가 다 한 것 같다. 야외 배식을 위해 테이블 세팅을 하는 것 등 배식조가 해야하지 않나 싶은 것들을 우리가 했다. 이후 배식 화물차가 오면 거기서 밥, 국, 반찬, 식기 등을 꺼내고 준비해놓은 테이블까지 옮기는 작업이 있었다. 이 때 행보관님이 우리랑 같이 일하던 분대장에게 막말을 많이 했는데, 이에 17번 훈련병이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. 말을 저렇게 싸가지없게 하는건 처음 본다면서 분개했다. 나도 좀 심하다 생각하긴 했고, 분대장들이 힘들거 같아서 안타까웠다.
  • (점심~오후 휴식) 배식조랑 나머지 전체 인원은 오후 훈련을 받으러 가고, 우리 생활관이랑 담당 분대장만 남아서 식사를 회수하러 오는 화물차를 기다렸다. 대강 30분~1시간 정도 편하게 앉아서 기다렸는데, 이 시간이 상당히 좋았다. 18번 훈련병은 친화력이 좋아서 분대장이랑 수다도 많이 떨더라. 화물차가 와서 물건들을 회수해 가니 2시가 다 되었다.
  • (오후 훈련) 오후 훈련도 오전과 마찬가지로 중간부터 참여했다. 교장을 쭉 돌면서 중간중간 배치된 분대장들에게 각종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다. 힘든 것은 거의 없었고 놀이공원 관광열차 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. 비가 그치고 날씨도 시원해서 트래킹하는 기분이 들어 좋더라. 비온 뒤 진흙바닥이라 엎드리는 자세 연습도 안 했다. 훈련은 이것으로 끝인데 사실상 한 게 없어서 훈련 내용에서는 힘든 것이 없었다. 걱정했던 각개전투 훈련 1일차가 너무 허무하게 끝났다. 내일은 장애물 코스 통과 등을 할 것 같은데 그것도 별로 안 힘들 것 같다.
  • (저녁 체력검정) 아무리 훈련이 쉽긴 했어도 이동 등으로 체력소모가 꽤 있긴 했다. 그 상황에서 3km 달리기 측정을 했다. 저번 1.5km 도 꽤 힘들었는데 지금은 몸이 지치기까지 한 상태에서 완주라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. 결과적으로는 스스로 만족할 만큼 잘 뛰었다. 일단 꾸준한 페이스로 3km를 쉬지 않고 뛴 것에 만족했다. 1km가 지난 시점부터는 고통도 거의 안 느껴지는 지점이 와서 그 이후로는 정신만 잘 붙잡고 뛰니까 완주가 되더라. 출발하기 전에 중대장님이 장난처럼 미드풋 개념이랑 무게중심 조절해서 뛰는 방법을 살짝 알려주었는데 그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. 등수로는 25등을 했고, 대략 5급 턱걸이 정도 성적일 것 같다. 그래도 지난번에 비해 몸이 훨씬 가벼워지고 체력이 많이 향상된 것 같아서 만족한다.
  • (저녁 세척) 3km 달리기가 끝난 뒤 쉬지도 못하고 바로 설거지를 하러 이동했다. 점심에 외부에서 식사한 것까지 세척해야 해서 일거리가 두배였다. 그래도 오전에 한번 작업방식을 싹 정리해놓은지라 작업 속도 자체는 잘 나왔다. 일의 양이 많은 것이 문제인데 나 포함 다들 지쳐서 정신력으로 버티면서 한 것 같다. 우리 생활관 사람들이 친해서 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. 끝날 때 다들 죽어가긴 했어도 표정이 밝아서 기분이 좋았다.
  • (저녁 샤워) 우리 생활관이 힘든 하루를 보낸 것을 분대장들도 알아서인지, 배려를 많이 해 주었다. 저녁 샤워는 야외 컨테이너에서 했다. 외관은 좀 별로였는데, 내부는 생각보다 깔끔하고 뜨거운 물도 잘 나와서 좋았다. 훈련소 와서 가장 고된 하루를 보낸 뒤 가장 만족스러울만한 샤워였다.
  • (저녁 점호) 샤워 끝나고 나니 8시 40분이 넘어서 정신없이 청소를 하고 저녁 점호를 했다.
  • (총평) 수료 전 가장 힘든 하루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고, 실제로도 많이 힘들었다. 다만 육체적으로 힘든 것 뿐이라 마음은 편했고, 생활관 동기들이랑 화이팅하면서 이겨내는 과정이 재미있기도 했다. 수료까지 가장 큰 산을 넘은 것 같다. 이제 진짜 끝이 보이는 시점까지 온 것 같다. 시간상으로는 8~9일 남았는데 그 중 휴일이 4일이나 있다. 남은 기간도 건강 (다이어트 포함) 잘 지키면서 지내자.
  • 포토스케치 사진이 나왔는데 생각보다 살이 별로 안 빠진 것 같다…? 나가서 재보면 알겠지만은… 그래도 체지방률은 줄었을 것 같다. 이만큼 움직이고 부식도 안 먹고 있는데 안 빠지면 그냥 굶어서 빼는게 나을 것 같다..
  • (이 노트는 여기까지, 14일부터는 다른 공책에 씀)